작년까지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면서 서울 종로 일대를 드나들 때마다 수시로 지나쳤던 길 세검정 삼거리, 특이한 이름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언제 한 번 꼭 이 일대를 와서 둘러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게 미뤄지고 미뤄져서 결국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난 후에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세검정 일대에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던 중 고등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과 이름이 같은 분이 펴낸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라는 책인데
거기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저자분의 직업도 선생님이시다. 이것만으로는 은사님이신지 알 수 없어 팩트체크를 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반가운 선생님의 이름이 떠올랐기에 기분 좋게 서점에서 책을 가져왔다.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됐고,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10대 종합일간지 사진기자를 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 첫 시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안민영 선생님의 사진반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충격을 받기도 했고, 그로 인해 사진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게 계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가 우연의 일치로 동명이인의 같은 직종에 근무하시는 전혀 다른 사람일지라도 그런 기억이 떠오른 이상 이 책과 함께라면 기분 좋은 탐방이 될 것 같았다.
창의문이 있는 부암동 일대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신교동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고 걸어서 창의문까지 이동했다.
자하문 터널을 관통해 갈 수도 있지만 조금 돌아가더라도 청운 도서관을 지나가는 코스를 택했다.
부암동 일대가 표고차가 크고 경사로가 가파른 지역이 많아 어느 정도 각오하고 나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가파른 골목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고개를 거의 다 올라가면 청운 문학도서관이 나온다.
청운 문학 도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도서관인데
산속의 풍광과 잘 어울려 마치 서울이 아닌 경북 안동 지역 어딘가에 있을 법한 서원을 보는 듯 하다.
청운 도서관을 지나면 작은 언덕이 나오는데
이 언덕의 이름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언덕 곳곳에 크고 작은 바위에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이 음각되어 있다.
길을 따라 쭉 가면
드디어 창의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왼쪽)
지금은 도로가 나 있지만(사진 가운데) 과거에는 창의문을 관통하는 길 단 하나뿐이었다.
창의문 옆에 산을 깎고 성을 잘라내어 지금의 도로를 개통한 것이다.
사진 오른쪽 부분에 과거에는 이어져 있었을 성벽의 일부가 보인다.
창의문과 이어져 있는 성벽의 모습
이 곳이 과거에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창의문 길이다.
지금은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작은 골목길일 뿐이지만
과거에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로였다.
창의문 옛길을 따라 들어가면 작은 터널이 나온다.
2005년에 방영한 MBC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봤던 사람이라면
기억이 날 수도 있는데
부암동 일대가 '삼순이'의 집 일대로, 이 일대에서 많은 촬영을 했기때문이다.
일명 삼순이 터널을 지나면 창의문이 모습이 드러난다.
창의문은 한양에서 경기 양주와 의주를 향한 문으로 과거에는 자하문이라 불렸다고 한다.
창의문은 1396년 한양 도성 축조와 함께 지어졌고
1741년(영조 17년)에 개수되어 4소문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부암동 주민센터로 내려와서 이번엔 계곡을 찾아가본다.
사진에서 오른쪽으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되는데
이 곳도 위에 언급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대표적인 촬영지였다.
부암동에 있는 계곡을 찾아 올라가는 중
현진건의 집 터가 나타났다.
현진건은 '운수 좋은 날'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아일보사의 기자이기도 했는데
동아일보 사회부 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따낸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삭제하고 보도를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 '운수 좋은 날'도 매우 유명하고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도 매우 유명하지만
'운수 좋은 날'의 저자와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도했던 인물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현진건의 집 터는 현재 개인 사유지로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 쌓여있어
내부를 둘러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진건 집터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드디어 계곡의 모습이 보인다.
청계동천이라고 불리는 부암동의 계곡.
이끼가 가득 낀 큰 바위와
수풀이 우거져있는 이곳.. 어디 평탄 한 곳에 자리 잡아 돗자리를 깔고
고기라도 구워 먹으면 세상 좋을 것 같은 이 곳의 분위기..
하지만 부암동에 계곡이 어디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사실 이 곳의 계곡은 이미 도로로 덮어진 상태로
과거 이 곳에 계곡이 있었다는 흔적의 바위 글씨만 남아있을 뿐이다.
올라오는 길이 비탈길이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 남겨진 계곡의 일부 모습과
과거에 있었을 계곡의 물줄기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계곡의 시원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은 부암동과 신영동을 이어주는 조석고개이다.
이 길이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혀있는 작은 샛길처럼 보이지만
조선시대때 부터 존재했던 길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이 고개를 내려가면 종이를 만드는 기관인 조지서가 있었고
조지서를 조세라고 불렀기 때문에 조지서고개로도 불렸다고 한다.
과거에 이곳에는 조지서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까지도 종이 공장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종이 공장은 없지만
홍제천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발견한 신문센터가 특별히 눈에 들어온다.
종이를 만드는 곳은 아니지만 종이를 이용하고 파는 곳이긴 하니까..
홍제천을 따라 내려오면
드디어 세검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세검정 주변엔 엄청 크고 넓은 바위가 많은데
과거에는 이 곳에서 붓글씨 연습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에 올라서서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옛날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했다.
지금의 홍제천은 하천 정비 사업으로 인공하천이 되어버렸지만
정비 되기 전 자연 하천이었을 당시의 모습은 얼마나 예뻤을 지 궁금하다.
홍제천을 따라 쭉 더 내려가면
오간대수문과 홍지문이 나타난다.
오간대수문과 홍지문은 한양도성과 북악산성의 사이를 방어하는 탕춘대성의 일부로
홍제천의 물 줄기로 인해 수문을 뚫어 성을 쌓은 곳이다.
오간대수문의 벽돌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한국전쟁의 총탄 흔적 등, 훼손이 거의 없이 깨끗한 걸 보니
복원된 것이 아닐까 추측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나
1921년 홍수로 유실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을 1977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라 한다.
오간대수문 옆에는 홍지문이 자리하고 있다.
홍지문의 모습.
여기까지 둘러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흘러 이번 탐방은
홍지문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탐방을 함께 한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는 아이들의 눈 높이에 맞춰져서 만들어진 책이지만
어른들이 봐도 충분히 흥미롭고 몰랐던 역사와 조상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사는 서울이 이런 곳이었다는 곳을 도시 곳곳에서 느낄 수 있기에
어느 여행 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좋은 가이드 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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